다윈 지능 - 공감의 시대를 위한 다윈의 지혜, 2012
ㅡ최재천 저
죽음이 생명을 허락한다. 맬서스가 밝힌 대로 어느 개체군이건 대부분의 개체들이 번식기에 이르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다른 개체들이 살아 남아 번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p.29
언제부터인가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흰 옷을 입은 천사들이 살아 있는 닭들을 땅속에 생매장하는 장면을 보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p.46
충분히 긴 시간이 주어지면 한 개체군에 있는 유전자들의 계보는 결국 그 옛날 단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드러난다. 시작 단계에서 아무리 많은 유전자 사본이 존재했더라도 시간이 흐름녀서 하나둘씩 소멸되고 결국 한 사본의 후손들만 남게 된다.
(중략)
이 결과들이 그 당시 인류 집단이 그 두 남녀 한 쌍으로 이뤄져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함께 존재했던 다른 미토콘드리아와 Y염색체들이 모두 진화의 도박판에서 손을 털렸고 가장 노련한 도박사의 후손들만 살아남았다는 얘기다. 물론 진화의 도박판이든 태백의 도박판이든 누가 궁극적으로 가장 노련한 도박사로 남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p.61
한 종의 인간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운 것도 아니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이 지극히 무계획적이고 무도덕적amoral이며 비효율적인 자연 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p.67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란 철저하게 상대적인 개념이다. 생물은 결코 절대적인 수준에서 미래 지향적인 진보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만 하면 선택받는다는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 진화의 기본 원리이다. p.69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은 그의 저서 <오시는 하느님Das Kommen Gottes>에서 미래를 ‘Futurum(Future)’과 ‘Adventus(Advent)’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Futurum은 아직 지나가지 않은 과거일 뿐이고, 기독교적인 시간인 Adventus는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념이다. p.70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던 로마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처럼 지금도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은 지성이나 감정 이입 등 우리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인간들의 속성들은 진보적 진화의 결과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중략)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굴드 진영에 가깝다. 그의 저서 <풀하우스Full House>에서 굴드는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온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p.71
생명체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모두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적 적응으로 간주할 수 없다. pp.76-77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설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진화에는 이처럼 역사적 제약historical constraint, 또는 계통적 제약phylogenetic constraint이 있다. p.87
경제적인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무슨 재료라도 가져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공학자와는 달리 자연 선택은 이처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을 가지고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p.89
벤 베일런이 바라보는 진화는 다분히 비관적인 개념이다. 진화란 제법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기획하고 준비하는 게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다. p.99
19세기 영국의 작가 피터 래섬Peter Mere Latham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완전한 계획을 세우려는 것은 쇠퇴의 징조이다. 흥미로운 발견이나 발전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완벽한 연구실을 설계할 시간이 없다.” 자연의 강은 완벽의 정상을 향해 거슬러 오르지 않는다. 그저 구불구불 흘러갈 뿐이다. p.99
인류의 해충 구제 역사는 그야말로 전쟁의 역사이다. 사용하는 용어만 보더라도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은 애초부터 그들과 함께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가차 없이 선전 포고를 하고 끝도 없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p.107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 것일진대 그러자면 이 세상 모든 수컷은 결국 암컷의 몸을 빌려야 한다. 천하의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도 마지막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조세핀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p.130
남성들의 대부분은 마치 일부일처제의 굴레가 벗겨지면 일부다처제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훤칠하고 잘생긴 송승헌이나 조인성 같은 친구들이 수백 명의 여성들을 휩쓸어 가기 때문에 우리 평범한 남성들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p.139
어느 종에서든 편법이 정도보다 더 효과적인 예는 없다. 에너지를 소모하며 소리를 질러 암컷을 부르는 정직한 수컷이 얌체족보다는 훨씬 더 많은 암컷들과 교미할 기회를 갖는다. 여장을 하고 다른 수컷들을 속이며 암컷에게 접근하는 수컷들도 할 수만 있다면 당당히 건장한 모습으로 암컷 앞에서 서고 싶을 것이다. 속임수와 요행수로 여성들의 환심을 사려 하는 남자들은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한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p.155
이른바 ‘은폐된 배란concealed ovulation’이라고 불리는 이 독특한 진화 현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 수컷들처럼 여러 암컷에게 관심을 보이다 보면 이리저리 배란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남성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은 한 여인을 선정하여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되도록 자주 잠자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래야 그 여인의 배란기에 맞춰 짝짓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자신이 그 여인이 낳는 아이의 아버지일 확률이 높아진다. p.163
많은 현화식물들은 ‘날아다니는 음경flying penis’인 곤충, 새, 박쥐들을 유혹하여 자기 대신 사랑하는 연인과 잠자리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칼부림을 해도 시원치 않을 불륜을 애써 간청하며 그도 모자라 고맙다고 꿀과 꽃가루로 보답까지 한다. p.187
철저하게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기반을 둔 그(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현상이 바로 자기희생self-sacrifice, 또는 이타주의altruism였다. 어떻게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희생하는 행동과 심성이 진화할 수 있을까? p.207
어느 날 진화학자로서 조물주의 마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J.B.S. 홀데인)는 곧바로 조물주께서는 “딱정벌레에 대해 병적인 호감an inordinate fondness for beetles”를 가졌던 분인 듯하다고 답했다 한다. 딱정벌레는 기재된 종만 무려 35만 종에 이르는데, 이는 전체 곤충 종 수의 거의 절반에 이른다. 홀데인의 상상 속에는 태초에 세상을 만드시던 그 엿새 중 어느 날 진흙으로 딱정벌레 한 마리를 빚으시곤 숨을 불어넣으신 다음 스스로 만드신 딱정벌레의 귀여움에 빠져 그만 멈추지 못하고 계속 딱정벌레를 만드신 하느님의 모습이 그려졌던 것이다. p.209
해밀턴의 이론에 의하면 번식이란 결국 유전자들이 자신들의 복사체들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의 표현을 빌려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p.213
생명, 적어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생명의 역사는 유전자의 역사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생명체들이 태어났다 사라져 갔어도 그 옛날 생명의 늪에서 우연히 탄생하여 신기하게도 자기와 똑같은 복사체를 만들 줄 알게 된 화학 물질인 DNA와 그의 후손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이 엄청난 생물 다양성을 창조해냈다. 각각의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은 분명히 한계성ephemerality을 지니지만 수십억 년 전에 태어나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DNA의 눈으로 보면 생명은 홀연 영속성perpetuity을 띤다. 지구의 생명의 역사는 DNA라는 매우 성공적인 화학 물질의 일대기이다. p.215
개체가 집단의 존속을 위해 자발적으로 산아 제한을 하는 체제는 결코 진화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체들의 이기적인 행동의 전파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p.220
자연 선택은 표현형에 작용하고, 그 결과로 후세에 전달되는 것은 유전자이다. p.223
두 윌슨 교수가 공동 저술한 2007년 논문 ‘사회 생물학의 이론적 기초를 다시 생각한다Rethinking the Theoretical Foundation of Sociobiology’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집단 내에서는 이기주의가 이타주의를 이긴다. 그러나 이타적인 집단이 이기적인 집단을 이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사변에 지나지 않는다.” p.227
해밀턴의 친족 이타주의kin altruism에 상응하여 호혜성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라고 명명된 그(로버트 트리버즈)의 이론에 따르면, 지금 이 순간 서로 도움을 주는 행위로 인해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의 사회성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p.232
선에는 선으로 대하지만, 악에는 자신이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그걸 응징하려는 성향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도를 닦던 스님마저 자신에게만 찬밥을 준다며 사찰에 불을 지르고 달아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p.238
문화는 어느새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손쉬운 설명 체계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에 기반한 논의는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 인과적 설명이 아니다. p.256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유명한 블로거 에르자 클라인Ezra Klein은 언뜻 궤변처럼 들리는 다음과 같은 명제를 던진 바 있다. “옛날엔 달랐다. 그러니 지금도 달라야 한다.Thing were different then, and because of that, they need to be different now.” p.257
감상: 최재천 교수님 책을 사서 읽은지 좀 돼서, 오랜만에 눈에 딱 띄길래 사서 읽었다. 아무래도 작년에 리처드 도킨스의 세 책 <이기적 유전자> <지상 최대의 쇼> <만들어진 신>을 꼼꼼히 읽어서 그래서 그런지, 전작들 보다는 훨씬 쉽게 읽혔다. 생물학을 싫어하던 열여섯 여학생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나보다. 최재천이라는 사람을 알게 해준 경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모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도정일 선생님과 함께 엮은 <대담>이라는 책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 같다.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이라는 인물을 통해 생물의 진화와 더불어 사회의 진화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걸 벌써 다 이해하면 내가 여기 있게?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바로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얻기 위해 잠시 만들어 낸 매개체에 불과하다.” 라는 말. 결국 DNA는 자신을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가장 나은 방법으로 진화해온 것이기 때문이니까. 라고 하면 이해를 잘 한건가.
어쨌든 오랜만에 읽은 과학책이다. 지난번에 산 <마이크로코스모스>를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언제쯤 다 읽을지 미지수.